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년은 어떻게 사라지는가 (문단 편집) === 전통적 교육관 vs. 진보적 교육관 === 교육이란 무엇일까? 교사는 무엇이고, 학생은 무엇일까? 어떤 교육이 참된 교육일까? 이렇게 생각을 시작하면 너무 뜬구름 잡는 것 같을 수 있으니, 잠시 아래의 표를 보면서 '''왼쪽 생각과 오른쪽 생각 중 어느 쪽에 더 공감이 되고 동의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모바일 환경에서는 열람이 어려울 수 있다.) ||<(> * 이미 완성된 인간이 자신을 발휘할 수 있게 돕는 과정||<#DDDDDD><:>'''교육이란?'''||<(> * 미완성된 인간을 사회의 일원으로 완성시키는 과정|| ||<(> * 학생의 자기계발 및 자유로운 자기실현 *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는 성인 * 억압으로 인한 고통 없이 행복을 추구하는 시민||<#DDDDDD><:>'''교육의 목표'''||<(> * 학생의 자기규율 및 준법시민화 * 도덕적이고 윤리의식을 갖춘 성인 * 사회에 헌신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인재|| ||<(> * 민주적이고 탈중심적 * [[자기주도학습|자기주도적 학습]] * 시행착오적 자기실현 과정에서 습득||<#DDDDDD><:>'''교육방식'''||<(> * 권위적이고 지시적 * 교사주도적 학습 * [[주입식 교육|정답 위주의 반복암기식 습득]]|| ||<(> * 성장의 촉진자 및 지원자 * 학생과 함께 자기를 실현하는 존재||<#DDDDDD><:>'''교사란?'''||<(> * 권위 있는 지식 전수자 * 완성되어 있는 존재|| ||<(> * 주체적으로 자기실현해 가는 완성된 존재||<#DDDDDD><:>'''학생이란?'''||<(> * 통제와 훈육을 필요로 하는 미숙한 존재|| ||<(> *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고 배우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관계||<#DDDDDD><:>'''교사와 학생의 관계'''||<(> *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교사의 위치와 학생의 위치는 엄연히 다름]]|| ||<(> * 자유로운 자기실현을 억압하는 사회화 요소||<#DDDDDD><:>'''일탈의 원인'''||<(> * 학생의 자기규율 능력의 형성 실패|| ||<(> * 억압적 사회화에 대항하는 정치적인 실천||<#DDDDDD><:>'''일탈의 예방'''||<(> * 예절교육/인성교육을 통한 자기규율|| 왼쪽과 오른쪽 중 어느 쪽에 더 많이 공감이 되었는지? 왼쪽을 진보적 교육관이라고 한다면, 오른쪽은 전통적 교육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양쪽 모두 일정 부분은 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는, '''최소한 남학생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의 교육관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교육관에 따르면, 남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을 사람 만들어 놓는 과정' 과도 같다. 이것은 독해력과 같은 학업성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성교육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제멋대로 야생마처럼 내달리는 야만스런 남학생들은, 교육 시스템 속에서 체계적으로 예절, 도덕, 윤리, 규범, 법치 같은 개념들을 거의 외워놓아야만 비로소 교화가 가능하다. 바로 이것이 남학생을 교육시키는 데 있어서 저자가 제안하는 유일한 왕도이다. 8장에서 저자는 '''남학생들이 여학생들보다 자기통제를 잘 하지 못하고 더 부도덕하다'''는 점을 제시한다. 한 예로, 《Report Card on the Ethics of American Youth》(2010)에서는 미국 고등학생 4만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 남학생들이 기만과 속임수, 위협에 대해 여학생들보다 더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상대를 속일 수 있다" 같은 진술들에 동의하는 윤리인식을 보였다고 하였다. 또한 미국 법무부, 미국심리학회(APA;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기타 등등의 권위 있는 기관들에서도 '''소년들은 소녀들보다 [[행동장애]], [[품행장애]], 일탈, 반사회적 행동이 더 심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그리고 그 사례로서 [[1989년]] 5월 25일에 있었던 글렌 리지 [[집단강간]] 사건(The Glen Ridge Rape), 그리고 [[1993년]] 3월경에 사회적 충격을 주었던 스퍼 포스(Spur Posse) 연쇄 성범죄 사건을 들고 있다. 이 사건들에 대해 버나드 레프코위츠(B.Lefkowitz) 등의 젠더 운동가들은 '남성성의 사회화' 논리로 설명했다. 즉, 흔히들 이런 끔찍한 성범죄 사건을 보면 '[[일부]] [[사이코패스]]', '[[일진]]', '[[정신병]]' 등으로 예외로 치부하곤 하지만, 이는 우리 사회의 일반적이지 못한 현상이 아니라 가장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젠더 운동가들은 사회의 문화적 분위기가 그런 [[강간]]이나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 자체를 긍정하며, 미디어와 남성 또래문화를 통해서 "남자라면 그 정도는 당연", "진정한 싸나이답다", "그런 행동은 범죄도 아니고 괜찮다", "다른 남자들의 동경과 부러움을 받을 것이다" 같은 메시지를 통해 가해자들의 어깨를 으쓱하게 하고 죄책감을 없앤다고 말한다. 요컨대, '''성범죄자들은 덜떨어지고 병적인 남성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남자다움을 가장 극적으로 실천한 남성'''이라는 게 이들의 논리다. 하지만 본서에서 저자는 전혀 다른 설명을 내놓는다. '''남성들은 원래 유난히 반사회적이고 비윤리적이게 마련이다.''' 바로 이 문제로 인하여, 국가사회는 체계적인 예절교육과 인성교육을 통해서 [[Manners, Maketh, Man|남성들을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어놔야 한다.]] 남성들에게 무엇은 해도 되고, 무엇은 하면 안 되고, 무엇은 인륜을 어기는 비윤리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머릿속에 아예 박아놓다시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렌 리지나 스퍼 포스 같은 불행한 사건들은 남성성의 사회화가 아니라, '''야만스런 소년들을 문명인으로 교화시키지 못한 교육의 실패라고 봐야 한다.''' 그 범죄자들로 하여금 "그때 내게 그것이 잘못이라고 따끔하게 혼낸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하고 때늦은 한탄을 하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진보적 교육관을 소년들에게 적용함으로써, 마땅히 소년들을 규율해야 할 도덕적 훈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일련의 사건들은 오히려 어른들이 남자아이들에게 기초적인 도덕 교육을 하지 않고 청소년 테러 행위를 처벌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증거다"(p.294). 여기서 저자의 관점이 단순한 [[엄벌주의]]의 논리가 아니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오히려 저자는 본서의 2장에서, '''진보적 교육관을 지닌 교육자들이야말로 엄벌주의를 철저하게 따랐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선 강간|흔히 시선만 닿아도 강간죄로 엄히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처럼, 진보적 교육관의 교육자들은 어린 소년들이 '폭력적 남성성' 을 드러내려 하기만 하면 그야말로 철저하게 내리눌렀다. 가해자의 가해(?)의 동기나 과거 행실, 위반의 경중은 전혀 융통성 있게 고려되지 않았다. 믿기 힘든 실화로, [[2009년]]에 [[델라웨어 주]]에서는 심지어 만6세 [[유치원생]] 남자아이가 자기 [[소풍]] 도시락에 캠핑용 다목적 [[맥가이버칼]]을 싸 갔다가 '''45일 동안 [[소년원]]에 구금당하기도 했다!''' 그게 위험한 것인지도 몰랐던 어린아이다운 생각이었을 뿐인데, 그것을 음험한 폭력성의 발현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그 외에도 [[피자]] 조각을 권총 모양으로 베어먹고 장난을 치다가 학생부에서 처벌을 받고, 친구와 R&T를 하며 뒤엉켜 놀다가 교장실로 끌려가는 등, 진보적 교육관의 '''무관용 정책'''은 소년들을 유독 가혹하게 다루었다. [[2007년]]에 미국에서는 학생 수가 5% 증가하는 동안 정학당한 학생 수는 무려 200% 증가했으며, 그 중의 70%가 남학생이었다고 한다. 소년들을 야생동물처럼 제멋대로 기르는 것이 문제이듯이, 엄벌주의 또한 해결책이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상기된 무관용 정책은 "남자아이들에게 해로운 것으로 판명된 잘못된 양 극단"(p.308)의 다른 한쪽 끝일 뿐이다. 저자의 논리는 단순하다. '''소년들이 강력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그것이 도덕적으로 잘못이라는 것을 왜 알려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저자가 원하는 것은 예방적인 차원에서의 '''[[인성교육]], 도덕성 교육, [[정신교육]], 예절교육'''에 가깝다. 저자는 8장에서 인격강조연맹(Character Counts Coalition)이나 교육학자 캐럴 올레드(C.G.Allred) 등의 인성교육 운동을 소개하면서, 소년들에게 '착하게 사는 것의 중요성' 을 미리 단단히 가르쳐 놓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물론 진보 교육자들은 이런 인성교육 운동에 대해서 "[[주입식 교육]]은 자율성과 인간성을 침해하는 [[세뇌]]나 마찬가지다!" 라고 항의하겠지만, 저자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것은 '''남성들이 자율성과 인간성을 발휘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인 '예의' 를 알려주는 교육'''이다.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교육만큼은, '''선생님이 그렇다면 학생은 무조건 그런 줄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예의에 있어서만큼은 타협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